느림보문화학당이 열리는 춘추관 서악마을 속 역사문화유산 체험입니다.
-태종무열왕릉, 서악서원, 도봉서당, 선도연못, 서악리3층석탑
선사시대 성혈바위, 주상절리, 문성왕릉, 진지왕릉, 헌안왕릉,
진흥왕릉, 쉰릉골, 선도산 정상 성모사, 통일신라 삼존미륵불
체험은 게시판을 통해 미리 예약해주세요.
신분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 되었던 김춘추, 신라 왕실에서 유일하게 묘호와 시호를 함께 가진 태종 무열왕이다.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왕. 김유신은 떡잎부터 그를 알아보고 김춘추의 킹메이커가 되기로 결심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김유신의 김춘추 사로잡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어느 날 김유신은 김춘추와 함께 축국(현재의 축구) 시합을 하다가 실수를 가장한 고의로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지게 했다.
옷을 수선해주겠다며 집으로 초대한 유신은 두 누이에게 김춘추의 옷을 고쳐달라고 하는데, 언니 보희를 대신해 문희가 그의 옷을 집어 들었다.
이것을 인연으로 문희는 김춘추의 아이를 갖게 된다.
자료출쳐 :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 장군 김유신의 무덤이다.
김유신(595∼673)은 삼국통일에 중심 역할을 한 사람으로, 김춘추(후에 태종무열왕)와 혈연관계를 맺으며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였고, 여러 전투와 내란에서 큰 공을 세웠다. 660년에 귀족회의의 우두머리인 상대등이 되어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668년에는 신라군의 총사령관인 대총관(大摠管)이 되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신라 삼국통일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무덤은 지름이 30m에 달하는 커다란 규모이며, 봉분은 둥근 모양이다. 봉분 아래에는 둘레돌을 배치하고 그 주위에는 돌난간을 둘렀는데, 둘레돌은 조각이 없는 것과 12지신상을 조각한 것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12지신상은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몸은 사람의 형체이고 머리는 동물 모양이다. 조각의 깊이는 얕지만 대단히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처럼 무덤 주위의 둘레돌에 12지신상을 조각하는 것은 통일신라 이후에 보이는 무덤양식으로, 성덕왕릉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자료출쳐 :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
도봉서당은 조선 성종 대의 학자였던 불권헌 황정(1426-1497)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45년(중종 1년) 지금의 위치에 추보재라는 묘사재실로 건립되었다. 이후 전란과 긴 세월을 거치며 훼손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불권헌 황정의 후손들이 1915년 추보재가 있었던 자리에 도봉서당 일곽을 중건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이 서당은 숭앙문·도봉서당·추보재·연어재·상허당 등 모두 7도이며 일종의 서원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배치형식은 재사를 강당 뒤에 둔 전강당 후재사형인데, 이는 경상도 지역에서 보기 드문 예이다. 강당(도봉서당)은 정면 5칸·옆면 1.5칸으로 전면에 툇마루를 두었고, 옆·뒷면에 쪽마루를 둘렀다. 사당(상허당)은 정면 4칸·옆면 1.5칸이며, 중당협실로 구성된 바로 볼때 강당형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서재(연어재)는 남쪽과 동쪽면을 모두 팔작지붕으로 처리하여 두 개의 정면을 갖게 한 점이 눈길을 끈다.
자료출쳐 :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
신라 삼국통일의 중심인물인 김유신 장군과 신라 학자인 최치원, 설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조선 명종 때 문신인 이정(1512∼1571)이 경주부윤이라는 벼슬을 지낼 때 지방 유림과 뜻을 같이하여 명종 18년(1563)에 세운 것이다. 선도산 아래에 ‘서악정사’로 세운 것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1602년 묘우, 1610년 강당과 동·서재를 새로 지었다. 인조 원년(1623)에 국가가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서악’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폐쇄되지 않고 살아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경내에는 위패를 모신 묘우와 교육 장소인 동시에 유림의 회합 장소로 사용하던 조설헌이라는 강당과, 동재·서재로 유생들의 숙식 장소로 사용하던 시습당과 절차헌, 제사 음식을 준비하던 전사청 그리고 영귀루라는 누각이 조성되어 있다. ‘서악서원’이라는 현판은 당시 명필인 원진해(元振海)가 쓴 것이다.
자료출쳐 :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
펜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에 잘 알려져 있지않아 한적하고 여륩게 경치를 둘러볼수 있는 숨겨진 명소인 주사절리가 위해 있습니다.
펜션에서 약 962m 도보로 약 5분
신라 24대 진흥왕(재위 540∼576)의 무덤이다.
진흥왕은 지증왕의 손자로서 고구려가 점령하고 있던 한강유역을 빼앗아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졌다. 562년 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 유역을 확보하였고, 함흥평야까지 진출하여 신라 역사상 최대 영토를 차지한 왕으로 점령지에 척경비를 세웠다.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하였으며, 신라 최대의 절인 황룡사를 세웠다. 또한 삼국통일의 중추세력인 화랑도를 창설하였다.
높이 5.8m, 지름 20m의 원형 봉토무덤으로 된 이 무덤은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돌을 돌렸으나 현재 몇 개만이 남아있다. 내부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으로 추측된다.
신라 왕 중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의 무덤으로서는 규모가 작은 편이며, 기록상 법흥왕과 같은 곳에 있어야 하므로 서악동 무덤들 중 위에서 두 번째 무덤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자료출쳐 :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
선도산자락 크고 작은 성혈들이 500여 개나 새겨져 있고 제작 시기는 선사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바위 크기는 장축 780cm, 단축 210cm 이다.
성혈은 바위그림의 한 종류로 돌에 파인 구멍인데 알구멍,알바위, 알터,알뫼라고도 한다.
이는 선사시대 별자리와 신앙의 한 형태로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주술적 행위의 흔적이다.
도봉서당 바로 뒤편 언덕에 통일신라시대의 3층 석탑이 있다.
화강암으로 축조된 이 탑은 보물 제 65호, 높이는 4.06m . 통일신라시대로 추측된다.
기단은 바닥돌 위에 다듬은 돌덩이 8개를 어긋나게 2단으로 물리게 쌓았고
1층 몸돌 한쪽 면에 문틀을 새기고 문틀 양쪽으로 인왕상 2구를 돋을새김하였다.
이 탑은 모전형식의 유형과 분포를 조사. 연구하는데 하나의 지표로서 중요성을 가진다.
신라 25대왕인 진지왕의 릉이다. 폐위되어 유궁에 갇힌 지 3년만에 죽었다. 진지왕은 본명이 사륜 혹은 금륜으로 진흥왕(眞興王)의 둘째아들이이다. 재위기간이 짧아 치적은 거의 없으나 중국의 진(陳)나라와 통교한 기사가 확인된다『
진지왕릉은 서악 선도산(仙桃山) 동쪽 기슭에 진흥왕릉과 인접하여 위치해 있다. 진지왕은 무열왕의 조부로서 무열왕릉 뒤편에 도열한 4기의 대형 고분 중 위에서 3번째 고분을 그의 능으로, 그리고 그 아래 4번째 고분을 그의 아들이자 무열왕의 아버지인 용춘공의 능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신라 제47대 헌안왕의 능은 사적 제179호다. 헌안왕의 성은 김씨, 이름은 의정이며, 신라 제45대 신무왕의 이복동생이다.
857년에 왕이 되어 861년에 승하하였으며, 4년간 왕으로 있으면서 제방을 수리하는 등 농사를 권장하였다. 공작지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에 의하여 선도산 이곳으로 비정하고 있다.
신라 제46대 문성왕의 성은 김씨이며 릉은 사적 178호이다.
서악 선도산의 진흥왕릉, 진지왕릉과 가깝게 있다.
문성왕릉은 1730년(영조 6)에 이르러 경주김씨 일족에 의하여 지정되었다.
문성왕의 무덤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서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삼국사기』에 기록된 ‘공작지’에 근거하여 조선 후기의 김씨일족이 문성왕의 무덤으로 비정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른 상황이다. 제23대 법흥왕부터 제29대 무열왕으로 이어지는 신라 중고기의 혈통에서 한참 늦은 시기인 제46대 문성왕이 같은 묘역에 묻히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고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추정에 그치고 있는 단계이다.
구절초길
구절초길
구절초길
구절초길
작약꽃길
작약꽃길
작약꽃길
작약꽃길
작약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무열왕릉에서 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위의 꽃길은 거의 같은 장소에 있으며넓은 선도산전체에 계절마다 꽃이 핍니다.
이미 명소로 이름난 이 꽃밭들은 경주춘추관에서 걸어서 6분 거리에 있습니다.
경주춘추관에 접한 태종무열왕릉을 돌아본 뒤에 위의 꽃밭이 있는 고분군으로 향합니다.
서악리3층석탑과 진흥왕릉, 진지왕릉, 헌안왕릉, 문성왕릉 그리고 50여기의 고분이 늘어서 있는 고분 사이사이에 꽃들이 피어 아름다운 길을 만들었습니다.
이른 봄에는 잔달래꽃길에서 진달래를 따먹기도하고 5월엔 작약꽃이 어마어마하게 피어나 향기롭습니다.
그리고 가을엔 구절초꽃이 고분군 전체를 수놓으며 눈이 내린 듯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줍니다. 경주춘추관에 오셔서 누릴수 있는 힐링의 시간입니다.